[워싱턴 법조계] 연방사법회의를 통해 본 미국 사법행정

지난 3월17일 워싱턴D.C. 연방대법원에서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 주재로 2009년 상반기 연방사법회의(The Judicial Conference of the United States)가 개최되었다. 이번 연방사법회의는 기존의 법관윤리강령을 보다 간단명료하면서 이해하기 쉽도록 전면 개정하고, 업무량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12명의 항소법원 판사와 51명의 지방법원 판사를 증원해 달라는 결의를 채택하여 의회에 전달하는 한편, 변호사에 대한 변론 허가절차에서 자격심사를 강화하는 방안과 인터넷을 통한 일반에 대한 재판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의결하고 막을 내렸다.

미국 사법부의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연방사법회의는 미국의 사법행정 시스템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연방사법회의는 의장인 연방대법원장과 13명의 연방항소법원장, 12곳의 항소구(Circuit)별 대표로 선출된 지방법원 판사 12명, 국제거래법원장 1명 등 모두 26명의 회원으로 구성된다. 각 항소구별 판사 대표는 사실상 지역 지방법원 판사들의 대표이며 3년 내지 5년의 임기를 보장받는다. 올해의 참석자 명단을 보니 지방법원장이 대표를 맡은 지역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 반드시 서열 순으로 참석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연방사법회의는 법률상 일년에 한차례 이상 소집하도록 되어 있는데, 1949년부터 봄과 가을에 각 한차례씩 개최하기 시작한 관례가 굳어져 현재는 항상 일년에 두 차례씩 열리고 있다. 사법부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연방사법회의가 일 년에 두 차례만 소집된다면 과연 산적한 현안들을 어떻게 결정하고 집행하는지 궁금해진다. 그 해결책은 위원회에 있다. 연방사법회의는 산하에 사법부 장기계획 수립, 사법정보화, 파산, 예산, 윤리감사, 법원행정 및 사건관리, 국선변호, 재산공개, 국제사법교류, 법관급여 및 후생, 법관 및 직원 인사관리, 각종 소송규칙 제·개정, 법원경비 및 시설 등을 담당하는 약 24개의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고, 300여명의 판사들이 각 위원회에 속하여 활동하고 있다. 일부 위원회는 전문성을 고려하여 주 대법원장, 법학교수, 행정부 공무원이 특별히 참여하기도 한다. 연방사법회의의 통상적인 활동은 연방사법회의 회원 7명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가 사실상 대행한다. 위원회 구성원들은 이메일, 전화 회의, 팩스, 소위원회 개최 등 방법으로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고, 연방사법회의는 이들 위원회의 보고 내용과 제안사항들을 추후에 승인 내지 결의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연방사법회의가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사무적인 지원 또한 절실하다. 법원행정처가 연방사법회의의 사무국 역할을 수행한다. 법원행정처장이 연방사법회의의 사무처장이 되고, 법원행정처의 각 담당관실은 해당 위원회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법원행정처는 스스로 결정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사법회의의 지시와 감독 하에 연방사법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고 연방사법회의에 보고하는 것이다. 한편 사법부의 정책결정을 지원하기 위한 장기적인 연구와 교육은 연방사법센터(Federal Judicial Center)가 맡고 있다. 결국 연방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은 연방사법회의의 의장으로 회의를 주재하고,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위원회의 위원들 전원과 이를 지원하고 집행하는 법원행정처, 연방사법센터의 간부들을 임명하는 것이 그 핵심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연방사법회의를 통하여 본 미국 사법행정의 핵심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하여는 연방사법회의와 같이 사법부 스스로 독립적인 예산 편성, 규칙 제정 등 독립적인 사법행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사법행정권이 재판권의 독립과 상호 모순되는 개념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적어도 역사적으로는 연방사법회의와 법원행정처의 창설이 사법권 독립을 위한 행정부와 의회에 대한 치열한 투쟁을 통해 얻어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789년에 미국의 사법부가 처음 만들어졌지만, 당시는 독립적인 청사는 물론 사법부 전체를 아우르는 행정조직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그저 개별적인 법원의 집합체에 불과하였다. 사법행정은 법무부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예산도 법무부 예산의 일부로 편성되었다. 한마디로 입법부, 행정부에 대응하여 사법부라고 부를만한 실체가 없었다. 그러다가 미국의 제27대 대통령을 역임한 윌리엄 태프트가 1921년 제10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의회를 설득하여 전국적인 연방사법회의를 창설하고, 독립적인 대법원 청사를 건축함으로써 비로소 현재의 사법부 위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미국의 법원행정처는 역설적으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반대하는 판결들을 연이어 내놓다가 대통령으로부터 사법부 재정비 계획(Court Packing Plan)의 대상이 될 위기를 경험한 에반스 휴스 대법원장이 행정부의 사법행정에 대한 영향력을 배제할 필요성을 느끼고 의회를 설득함으로써 1939년 비로소 만들어졌다. 독립적인 법원행정처의 설립으로 비로소 법무부의 사법행정에 대한 관여가 공식적으로나마 끝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 사법부의 행정권한은 단계별로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연방사법회의는 사법부 전체에 관련된 주요 정책 및 예산안을 결정하나 직접 구체적 집행에 관여하지 않고, 각급 법원장이 자체적으로 직원 인사, 예산집행의 권한을 갖는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법원행정처에서는 법원별 예산 총액만을 분배하고 법원장은 배정된 범위 내에서 예산 항목을 스스로 집행하며, 법원별로 직원 선발 및 인사권을 갖고 있다. 또한 연방사법회의와 별도로 지역항소구 단위의 법관회의(the Judicial Council of the Circuits)가 존재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항소구 법관회의는 의장인 항소법원장과 같은 수의 항소심 판사 및 지방법원 판사 대표로 구성되는데, 항소구역내의 모든 법원에 대하여 필요한 구체적인 조치를 직접 취할 수 있는 점에서 연방사법회의와 구분된다. 특히 항소구 법관회의는 소속 법관이 주어진 업무를 적정히 처리하고 있는지를 감독하며 법관의 비행 또는 부적격 사유가 있을 경우 이에 대한 조치권한과 항소구 내부에서 법관에 대한 임시적인 인사권한까지 갖고 있어 법관에 대한 실질적 영향력은 매우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느 단계에서든 사법행정에 대한 최종적 권한과 책임은 동시에 판사에게 속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법원행정처에는 법관들이 근무하지 않지만 간부들은 대법원장에 의해 임명되고 연방사법회의의 지시와 감독 하에 업무를 처리한다. 항소법원의 사무국장은 항소구 법관회의에서 임명되며, 각급 법원별로는 법원장이 직원에 대한 채용 및 인사권을 갖는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연방사법권은 미국 특유의 연방제도에 근거하고 있고, 모든 연방판사가 오랜 경험을 통해 검증된 법조인들 중에서 상원의 인준을 거쳐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며, 한번 임명되면 한 법원에서 종신으로 근무한다는 점에서 우리 제도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다만 이들이 추구하려고 하는 제도의 이상은 한번쯤 경청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우리도 미국처럼 사법행정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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