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법제도의 특징

Ⅲ. 미국의 사법제도와 법조인

1. 미국식 사법제도의 특징

미국의 법률과 사법제도는 여러 면에서 로마법을 계수한 대륙법(civil law)과 구별된다. 그러나 미국법은 1776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선언과 동시에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고, 식민모국이었던 영국의 보통법으로부터 발전․분화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법의 발전과정에서 영국의 보통법(common law)이 미친 영향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깊고 광범위하였다. 특히, 영국의 저명한 법률가였던 블랙스톤(Sir William Blackstone)의 저서인 『영국법 주석』(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은 미국의 법률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1) 그의 책은 18세기 중반 식민지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best seller) 중의 하나일 정도로 미국에서 널리 보급되어 법률가들의 실무와 연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오늘날 미국법의 특징은 대부분 영국법의 특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미국법의 특징을 찾기 위해서는 오히려 영미법(Anglo-Saxon Law)의 특징을 찾는 것이 더 용이할지도 모른다. 다만, 여기서는 미국법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위해 몇 가지 미국법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1) 보통법(Common Law System)

개념과 정의, 그리고 논리를 중시하는 대륙법계 학자들에게 보통법의 개념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미국의 위대한 법학자 홈즈 판사가 밝힌 바와 같이, 보통법의 생명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에 있기 때문에 수세기의 경험과 선례를 통해 형성되어 온 보통법 전체를 한 마디로 말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보통법은 개념이 아닌 맥락과 선례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설명이 어렵다. 다만, 보통법이란 로마법으로부터 발전되어 온 성문법과 논리에 기초한 대륙법과는 구별되는 영국에서 왕실법정과 판사들에 의해 발전되어 온 전체적인 법 규범체계이자 법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대륙법과 구별되는 보통법의 우선적인 특징은 판례 또는 선례 우선주의와 불문법주의라고 할 수 있다. 대륙법계에서 엄격하고 논리적인 실정법 또는 조문위주의 법 해석주의를 추구하고 있으나, 보통법을 중시하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인간 사회생활의 경험을 통해 이성에 맞는 법을 찾고자 했고, 이러한 이성에 맞는 법은 인간생활의 조리와 경험을 통해 형성되어 왔고, 이것이 보통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발전과 인간사회의 분화에 따라 보통법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시대가 단순하였을 때는 사람들간의 분쟁도 재산관계 분쟁, 형사상의 처벌 등에 국한되었으나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인간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종래의 관행과 경험에 의존한 보통법만으로는 법률상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노정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오늘날은 보통법만이 미국법의 본류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고 현재는 보통법이 미국법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남게 되었다. 특히, 불법행위법, 재산관계법, 가족법, 형법 등에서는 아직도 종래 보통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어 이들 분야에서는 여전히 보통법이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2) 연방주의

미국은 여러 주(state)가 영국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서 뭉쳐진 일종의 국가연합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본래부터 정치적 자율성과 주권(sovereignty)을 가진 주 정부와 중앙정부인 연방정부간의 권한배분에 관한 합의가 필요하였다. 연방주의(federalism)는 바로 이러한 주 정부와 중앙정부간의 정치적 권한 배분에 관한 원칙을 말한다. 미 연방헌법 수정헌법 제10조는 이러한 연방주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동 조에 따르면, 헌법에 따라 연방정부에 위임되지 않은 권한이나 주 정부에 금지되지 않은 권한은 모두 주에 유보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간 통상, 외국과의 선전포고, 대외관계, 통화발행 등과 같이 헌법에 따라 연방정부가 권한을 행사하도록 위임된 권한이 아닌 모든 사항에 대해서는 주정부가 권한을 행사한다. 주 정부가 행사하는 권한 중 대표적인 것이 형벌권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범죄에 대한 처벌권이 원칙적으로 주 정부에 위임되어 있다.

각급법원의 관할권 행사도 연방주의에 따른다. 미국의 법원은 3심제를 따르고 있는 연방법원(federal courts)과 주 법원(state courts)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전자는 연방 또는 중앙정부가 관련된 사안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하며 후자는 주 정부 소관 사항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판사 임명도 연방법원 판사는 대통령의 제청과 상원의 인준동의를 거쳐 이루어지나, 주 법원 판사는 선거, 임명 등 주마다 서로 다른 임명절차를 갖추고 있다. 임기도 연방법원 판사는 종신이나, 주 법원 판사는 다양하다.

(3) 배심제도

배심제도(jury trial)는 영미법에서 유래하는 독특한 재판제도이다. 이 제도는 원래 피고인과 동일한 신분에 속하는 동료 시민들의 일반적인 법감정으로부터 자신의 유․무죄 여부를 물음으로써 절대군주가 임명한 왕실판사에 의한 자의적인 재판으로부터 시민의 인권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는 미 연방헌법상 규정된 형사피고인의 가장 중요한 권리 중의 하나이자 피고인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리보장장치이다. 그래서 배심재판에 의하지 않는 형사재판은 무효이다. 배심재판은 또한 시민들이 국가의 형사사법절차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제도의 하나이다.

배심재판은 원칙적으로 피고인의 혐의에 대한 유․무죄만을 따지는 형사재판과정에서 적용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일부 주에서는 민사재판의 경우에도 배심재판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민사재판의 경우에 배심재판제도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형사사법제도 개혁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바로 영미법상의 배심제도 채택문제이다.

(4) 당사자 변론주의

미국의 사법제도를 가장 역동적이게 만드는 제도는 배심재판제도와 함께 바로 당사자 변론주의(adversarial system)이다. 당사자 변론주의는 법관이 법정에서 직접 원고와 피고를 심문할 수 있는 대륙법계의 규문주의(inquisitorial system) 및 서류의 심사를 중시하는 서증주의와는 달리 원고와 피고가 서로 핏발을 세워가면서 싸우는 과정에서 진실을 발견해 가는 소송상의 제도이다. 당사자 변론주의하에서는 판사가 원고와 피고측이 제출한 서류를 살피면서 서류상 증거의 하자나 논리의 오류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판사는 공정한 재판이 되도록 사회만 보는 가운데 당사자들이 벌이는 구두변론과 증거에 의해서만 진실을 발견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당사자 변론주의하에서는 원고든 피고든, 특히 형사재판의 피고측은 자신의 무죄를 위해 자신의 입장과 대립되는 상대방을 법정으로 끌고 와서 심문할 수 있는 방어권(cross-examination)이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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